지금은 그 모습이 많이 변해 옛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범의 대가리를 본뜬 상형자이다. 몸통과 다리까지 온전한 범은 虎(범 호)인데 다른 글자와 합쳐 쓰일 때는 일반적으로 虍의 형태를 갖는다.
흔히 범과 호랑이를 잘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. 범은 순수한 우리말이고 호랑이는 호랑(虎狼)과 주격조사 ‘이’가 합쳐진 말로, 엄밀히 따지자면 ‘범과 이리’의 합성어라고 할 수 있다.
지금은 동물원에 가서야 겨우 볼 수 있는 동물이지만 신선이 동네 개처럼 데리고 다니던 친근한 존재이면서 인간에게 가장 위협적인 산중왕이다. 조선시대 사람들은 호랑이에게 죽음을 당하면 창귀(倀鬼)되어 범의 노예로 늘 붙어 다니며 다음 희생의 대상물로 인도한다고 여겼다. 그래서 범에 의해 죽은 사람은 화장을 한 후 돌무덤을 만들고 그 위에 시루를 뒤집어 놓고 칼 등을 꽂아 귀신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처방을 하였다. 당시 이러한 호식총(虎食塚)이 수도 없이 많았으니 범으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된다.
범[虍]이 있는 언덕[丘]는 다른 짐승뿐 아니라 사람도 얼씬도 못하고 텅 빈다는 뜻의 虛(빌 허), 범[虎]이 발[夂]을 웅크리고 처해 있는 모습을 본뜬 處(처할 처), 범[虍]이 날카로운 발톱[爪]으로 사납게 하다는 의미를 가진 虐(사나울 학)이 대표적인 글자이다.